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해자가 된 피해자 (문단 편집) == 개요 ==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명언은 현재 [[고인 물은 썩는다]]처럼 [[농담]]조로도 쓰이고 있다. 그러나 니체가 말하는 괴물이나 심연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그것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보통 피해자로 여겨지는 "약자"를 절망과 죄책감, 천민의 도덕을 퍼트리고 강자의 미덕을 파괴하는 자들이라 칭하며 노골적으로 멸시하는 사람인지라... [[문맥을 무시한 인용|잘못된 용도로 인용되는 사례]]인 셈.]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을 넘어서 中 >He's got his mother's face. And his father's hand. [[https://www.vingle.net/posts/252689|▶]][* 포르투갈 범죄 피해자 지원센터(APAV)의 공익광고] >---- >엄마의 얼굴을 닮았고, 아빠의 손을 닮다. 여러 창작물에서 등장하는 [[클리셰]] 중 하나. 이전의 피해자가 이후의 가해자가 되는 경우로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사실 창작물뿐만 아니라 의외로 현실에서도 제법 보이는 사례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비행 청소년들도 학교의 피해자가 있다고 한다. 무리 내에서 당하고 사는 청소년들도 있다. 그래서 학교를 포기하면 오히려 탈선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15/2013021501994.html|기사]], [[http://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051|기사 2]]]. 대부분 [[타락]],[[흑화]]를 의미하지만 타락이 아님에도 [[도와주고 누명쓰기]]처럼 가해자로 오해받는 피해자도 아우르는 복합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이 클리셰의 대표적인 유형 중 하나는 '''과거에 어떤 형태로든 피해를 입었던 사람이 나중에 자신이 당했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고 있는 케이스이다.''' 이 경우 피해자였던 시절의 일 때문에 동정을 받는 경우[* 보통 이런 경우엔 행위의 목적이 보복이고 보복의 범위가 피해의 범위보다 작거나 같을 때만 성립한다. 특히 대상이 '''가해자'''나 '''가해자의 측근'''일 경우에 동정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다만 행위를 '''피해자 시절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에게 하거나''' 본인이 피해받은 것보다 상당한 피해를 끼치는 [[빌런]], [[트롤링|트롤]]이 된 경우엔 동정따윈 기대할 수 없다. 예컨대 전치 2주의 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같이 피해에 비해 과도한 복수를 저지르는 경우라면 동정받긴 어렵다. 다만 이것에도 또 예외가 있으니 본인이 받은 피해가 지속적이고 그 수법이 악랄한 경우에는 예외가 된다. 예컨대 십 수년간 아동학대를 해온 부모를 죽인 케이스([[https://sc.scourt.go.kr/sc/krsc/criterion/criterion_01/murder_01.jsp|양형위원회 참작동기 살인 참조]])][* 또한 남자들에게 폭력이나 성폭력을 당해서 남혐이 되는 케이스도 있다. 이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는 폭력을 저지른 그 남자들의 잘못이지, 다른 무고한 대부분의 남자들의 잘못인 것은 아니므로 피아구별 못가리는 이런 멍청한 행동은 최소한의 동정조차도 받지 못한다.]도 있으나 이후의 전개에서 쓰레기들이나 하는 짓을 저질러 그나마 옆에서 실드를 쳐주던 사람들에게서도 버림받는 경우 역시 드물게 발생한다. 현실에도 이런 일이 드물지 않은데 대표적으로 군대나 각종 스포츠계 단체(대학교의 각종 운동 학과, 전문 스포츠팀 등), 좀 더 생활밀착형으로 설명하자면 시가(媤家)와 며느리가 그러하다. 사실 지금도 어디선가 후임들을 갈구는 선임들도 처음부터 그렇게 악독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 물론 천성이 남 괴롭히기 좋아하는 악질들도 있다. 후임때에는 괴롭힐 대상이 없어서 괴롭힘만 당했고, 선임이 되어서야 약자인 후임을 괴롭히는 제 버릇을 다시 드러낸 것일 뿐이다.] 이 악독한 선임들도 과거엔 자기 선임들에게 갈굼당하던 후임들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본인도 엄연한 피해자였음에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가해자로 바뀌는 까닭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만 몇 개 추려보자면, '나는 너와 같은 시절에 갈굼당했는데 너는 편하게 있으면 나만 억울하잖아!' 같이 일종의 [[보상심리]](즉 본전생각)에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똑같이 수행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후임 시절 갈굼을 당하다보니 점점 자신도 모르게 '너희 같은 것들한테는 이래도 돼' 같은 [[인지도식|생각이 무의식중에 새겨지게 되면서]] 아무 문제의식 없이 자신이 겪은 일들을 똑같은 수행하게 되는 경우이다. 때문에 아무리 [[갑질]]이나 [[학교폭력]], [[똥군기]], [[시집살이]] 등이 세간에게 욕을 먹어도 정작 당사자들은 상기한 이유들 때문에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해 자정능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므로 누군가 가혹행위를 하지 못하게 강제하지 않는 이상 자발적으로는 쉽게 근절되지 못하고 오래 남게 된다. 아니, 위에 예시로 든 것들은 '''실제로 관련 법이 있는데도''' 적발도 쉽지 않고 기준이 너무 애매해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것들뿐이다. 또 다른 경우는 사건의 피해자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입장이 뒤바뀌어 가해자가 되는 경우다. 원래의 가해자가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입장을 뒤집어버리는 식의 묘사가 등장한다. 그밖에도 사건 피해자이지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고 오히려 자신이 상대방에게 저지른 행위가 가해행위로 인정되는 경우도 있는데 [[도와주고 누명쓰기|실제 현실에서도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예를 들어 소매치기를 잡으려다가 치한으로 몰리는 경우.] 이 경우에는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한 활동으로 내용이 전개되거나 복수극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어느 쪽이던 간에 본인들이 가해자인만큼 마지막엔 자신들도 다른 가해자들과 마찬가지로 심판 당하거나 좋지 않게 끝나는 결말을 맞이하거나 아니면 작중 최후의 승자가 된다. 전자의 경우 권선징악을 중시하는 작품이나 작중 주인공의 주적으로 등장할 때 많이 보이고, 후자의 경우 현실적인 분위기의 작품에서 많이 보인다.[* 알고 있겠지만 이 나라가 법치주의인 이상 재판청구권을 제외하고 법에 명시된 예외적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사적제재|다른 사람을 직접 심판]]할 권리가 없다. 자신이 처벌하는 순간 그게 물질적이든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히든 범법이기 때문. 감정에 휩쓸려 보복하는 순간 똑같은 사람이 된다는 걸 기억하자. 조심해야할 것은, 이런 클리셰의 대부분이 현실적이기 때문에 현실로 착각하며, 실제로 가능하다고 착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보복성 사적제재를 했다가는 법앞에서 정당방위 따윈 없으며, 운이 좋아야 감형을 받고 보통은 감형없이 자신이 한 범죄와 똑같은 형량을 받게 된다.]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첫째 에피소드 [[뫼비우스의 띠]]는 바로 이 상황을 비유한 제목. 재개발 피해를 본 앉은뱅이와 꼽추가 자기네 입주권을 강탈한 부동산 개발업자를 살해했다.[* 이건 부동산 개발업자한테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 차라리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기보다 복수에 더 가깝다.] 반대로 [[피해자가 된 가해자|이전의 가해자가 이후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있으며, 둘이 같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물론 사회나 집단이 난처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악을 자처하는 경우가 있다. 창작물에서는 보통 내용은 반대로 현재 가해자인 자가 알고 보니 과거에는 피해자였다라는 쪽으로 전개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